역사의 재현이다. 고전으로 남아 있던 삼국지가 다시 IT에서 부활했다.
지난 세기, 아날로그의 구체제를 전복하고 디지털 시대를 연 것은 PC의 황태자 빌 게이츠였다. 불과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굴지의 부호로 군림했던 그는, 소프트웨어가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던 시대에 MS-DOS, 윈도우 그리고 오피스 시리즈를 연달아 지구적 차원으로 성공시켰다. 나아가 운영체제와 오피스 시리즈를 중심으로 한 빌 게이츠의 MS는 IT 산업은 물론 IT가 영향을 미치는 사회 생태계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구체제인 아날로그 시대를 붕괴시키며, 빌 게이츠와 MS가 누리던 부와 영향력의 집중은 후한 황실의 몰락을 기반으로 등극했던 동탁의 권세에 비견할 수 있다. 동시에 빌 게이츠를 중심으로 한 IT 산업 구조와 거기에서 파생된 산업 유통 질서에 편입했던 세력들은 십상시에 비교할 수 있다. 물론 혹독한 비교다. 컴퓨터를 개인들의 필수품으로 만든 빌 게이츠의 공적은 결코 평가절하할 수 없다. 또한, 빌 게이츠와 함께 IT 산업, 그리고 그 IT를 기반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위해 도전과 혁신의 길을 달려왔던 지난 IT 산업계의 거인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의 ‘PC 시대’가 이미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넷북을 통해 IT 생태계의 체제 변화를 시도하려 했던 MS는 발목을 잡혔고, 이는 PC 시대 붕괴의 전초전이었다. 그리고 PC라는 ‘베를린 장벽’, 디지털과 아날로그 시대의 경계선을 무너뜨린 것은 스티브 잡스였다. 20대 초반에 맥 컴퓨터를 등장시키며 사실상 빌 게이츠에 앞서 PC 시대를 예고했고, 기계와 인간 사이의 대화를 위한 플랫폼인 GUI(Graphic User Interface)의 상용적 전형을 보여주었던 잡스가 화려한 ‘왕의 귀환’을 한 것이다. 아이팟 시리즈로 그 간에 쌓인 내공이 녹록치 않음을 보여주었던 그는 아이폰, 아이패드에 이어 지속적인 ‘아이’ 시리즈로 시장을 선도하며 IT계의 후기 PC 시대를 주도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잡스가 ‘갑자기’ 혁신적이 된 것은 아니다. 처음 맥을 들고 나왔을 때부터 이미 잡스가 꿈꿨던 세상, IT와 미디어가 융합된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환경이 ‘지금’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늘 그가 이야기하던 ‘미래’가 ‘현실’이 된 오늘, 잡스는 무서운 질주를 하고 있다.
다시 삼국지 이야기로 돌아가자. 빌 게이츠와 그의 무리들이 동탁과 십상시라면, 스티브 잡스는 어느 인물일까. 혁명가로서의 잡스를 높이 평가하지만 이 풍운아, 희대의 인물은 화북의 기린아 ‘원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 PC 체제가 무너지는 지금은 아직 ‘적벽대전’이 아니기 때문이다. 잡스가 이끌고 있는 아이폰 중심의 ‘모바일 컴퓨팅’은 우리의 눈에 먼저 띄기 때문에 주목하고 있는 현상일 뿐이다. 실질적으로 더 본질적인 변화는 ‘클라우드 컴퓨팅’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이란 미국의 저명한 IT 컨설턴트 니콜라스 카가 그의 저서 <빅 스위치>(The Big Switch)에서 한 말을 빌리자면, 과거 개인용 전구가 중앙 공급용 전력으로 발전한 것처럼, PC가 서로 연결되고 발전되어 월드 와이드 웹을 구성했고, 이제 그것이 한 단계 더 발전하여 ‘월드 와이드 컴퓨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다시 정리하자면, 이제 우리는 개인이 소유해서 사용하는 PC가 더 이상 필요없게 된다. 컴퓨터는 이제 언제, 어느 곳에나,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이 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이폰, 아이패드 등의 새로운 휴대용 디지털 기기가 등장할 수 있는 이유다. 어떻게 그렇게 깔끔하고 가벼운 디자인이 나올 수가 있는가. 그러한 컴퓨팅을 기기 자체 안에서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전기를 끌어다 쓰듯이 이제 컴퓨팅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시대가 등장했다. 그것이 클라우드 컴퓨팅이라는, IT 세계의 근본적인 질서를 흔드는 변화이고, 그것이 표면적으로 등장한 사례가 지금 애플이 이끌고 있는 모바일 컴퓨팅이다.
다시 말하자면, 모바일은 결과이지 원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모바일 컴퓨팅 자체가 클라우드 컴퓨팅을 흔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클라우드의 진화는 모바일 컴퓨팅은 물론 ‘컴퓨팅’이란 개념 자체를 바꿀 것이다. 여기서 컴퓨팅의 개념 자체를 바꾼다는 말은, 클라우드가 진전되면 이제 컴퓨팅이란 그 자체로 ‘인프라’, 카의 말처럼 ‘전기’가 될 것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이 ‘적벽대전’을 바라보고 뛰고 있는 기업들이 누군가.
첫 째는 구글이다. 다시 카의 <빅 스위치>로 돌아가면, 카는 구글을 ‘아이갓’(iGod)에 비교했다. 잡스가 만드는 것이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라면 구글이 만들고자 하는 건 전세계의 정보의 집약과 운용인 ‘아이갓’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레리 페이지의 오랜 꿈인 궁극의 AI(인공지능)의 실현이다. 그들은 기계 하나로 달성하려 했던 인공 지능의 목표를 클라우드 컴퓨팅을 기반으로 전세계의 지식과 정보를 끌어모아 인간과 기계 사이의 벽을 무너뜨림으로써 해내려고 하는 것이다. 애플이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의 경계인 PC를 무너뜨려 모바일 컴퓨팅을 개막하려 했다면, 구글이 노리는 것은 지금까지 존재했던 인간과 기계 사이의 벽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검색엔진 수준이 아니다. 모든 정보가 다 디지털화되는 것, 그리고 그렇게 디지털화된 정보가 전기, 수도, 철도 같은 또 하나의 유틸리티가 되어, 인프라가 되어 사회적 변화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애플이 원소라면, 구글은 조조다. 아무리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더라도 그 플랫폼에 유통될 수 있는 콘텐츠와 그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을 쥐고 있는 한 구글은 난적이다. 그렇다면 이 구글을 과연 어떻게 상대해야 할 것인 가. MS에 리눅스가 저항했고 파이어폭스가 저항했듯이, 우리는 구글에 어떤 대항마를 키울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어떻게 비즈니스 생태계 내에서 견제와 균형을 이뤄내면서 개인정보 보호와 가치 증진이라는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것인가. 이 것을 놓고 보았을 때 구글은 치세에는 충신, 난세에는 간웅인 조조에 비할 수 있는 존재다.
구글과 다른 각도에서 시장을 접근하고 있지만, 역시 또 다른 유틸리티, 인프라가 됨으로써 제2의 빌 게이츠가 되고자 하는 것은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다. 아직 27살인 이 동안의 CEO는 한 번도 자기 회사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이스페이스 같은 기존 SNS 회사와 자기 회사가 비교당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페이스북의 홈페이지에도 명백히 써 있는 그의 회사의 소개는 소셜 웹 유틸리티 회사다. 이 유틸리티의 영어상 의미는 앞서 말한 것처럼 인프라다. 전기, 수도, 철도와 마찬가지다. 새로운 산업의 기반을 만들겠다는 것이고, 그것을 중심으로 기존 질서를 재편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동일한 새로운 유틸리티의 야망을 가지고 있는 페이스북의 저력은 막대한 이용자수다. 현재 4억, 그리고 멀지 않아 10억. 전세계에서 인터넷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인구의 대다수를 조만간 장악하겠다는 뜻이다. 지금은 페이스북의 수익 모델이 잘 보이지 않지만, 그것은 초기 구글도 마찬가지였다. 애드센스를 선보이기 전까지 구글의 행보는 미약했다.
페이스북이 저력을 보일 수 있는 사례는 소셜 네트워킹에 기반한 전자상거래 모델일 것이다. 기왕 직거래를 한다면 아는 사람, 혹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통해 거래를 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신뢰가 간다. 페이스북의 소셜 네트워킹, 그들의 알고리즘인 ‘소셜 그래프’는 그것을 할 수 있는 기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최근 소셜 그래프를 중심으로 웹 생태계를 구축하려고 하는 페이스북의 전략은 길게 보면 온라인 상거래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어 넣기 위한 수로 보인다. 이러한 전략이 성공한다면, 이베이 등을 비롯한 기존의 온라인 쇼핑몰 등은 크게 위협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유틸리티를 노리는 페이스북의 여러 전략중 하나일 뿐이다. 이렇게 방대한 이용자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패권을 노리는 페이스 북은, 강남의 비옥한 땅과 압도적인 인구를 기반으로 조조의 위나라와 겨누려 했던 오나라의 손권에 비교할 수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 신(新) IT 삼국지의 조조와 손권, 이 새로운 유틸리티 후보들이 노리는 것은 단순한 매출 증대나 시장점유율 증가가 아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새로운 세상이다. 구글과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세상이 아니라, 구글과 페이스북을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될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PC 이후 시대, 천하삼분지계를 우리는 어떻게 논해야 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확실한 것은 누구에게나 불확실성 뿐일 것이다.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이 변화를 읽는 ‘관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현상은 계속 바뀌지만, 그 변화의 원리는 영속하기 때문이다.
니콜라스 카가 IT 컨설턴트로 명성을 날리게 된 것은 사실 저 클라우드 컴퓨팅에 관한 ‘빅 스위치’가 아니고, 그 전에 2003년 5월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기고한 ‘IT는 문제가 아니다’(IT Doesn’t Matter)라는 글이었다. 글에서 카는 일찍이 이러한 IT 업계의 변화, 기술의 발전이 성숙함에 따라 기술 자체가 경쟁우위를 만들어내지 못하게 되는 현실을 지적한 바 있다.
이것은 우리 개인 경험을 돌이켜봐도 일리가 있다. 어느 시점을 넘어가서부터는 PC 성능이, 디지털 카메라 화소가, 그리고 휴대폰 통화 음질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문제는 그러한 기술 성숙도의 변화, 기술의 역치에 도달하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 점을 고려하면 모바일 컴퓨팅도, 클라우드 컴퓨팅도, 시맨틱 웹도, 그 무엇도 머지않아 독점 기술(proprietary technology)에서 인프라 기술(infrastructure technology)로 변해갈 것이다. 즉, 기술 그 자체는 곧 ‘문제가 아니게’ 된다.
따라서 생각해야 할 부분은 오히려 이들 새로운 유틸리티가 정립되고 난 이후의 전쟁이다. 그것은 진정한 ‘적벽대전’이다. 돌이켜보면 적벽대전은 유비와 공명이 자기 힘으로 싸운 전쟁이 아니었지 않은가. 유비와 공명은 손권과 주유의 힘을 빌려 조조를 쳤다.
그렇다면 우리의 동남풍은 무엇이 될 것인가. 여기서 다소 엉뚱할 수도 있지만, 미국의 시골 주, 아칸소가 낸 희대의 인물 ‘샘 월튼’이 그 답일 수 있다.
월튼의 ‘월마트’는 사실 화려하지 않지만 그동안 제대로 IT를 사용해 온 기업이다. 다른 기업들이 IT의 화려한 사용을 자랑하고 있을 때, 이들은 IT의 이소룡으로서 철저한 절권도 정신, 실전 무예에 충실했다. 이 기업의 글로벌 아웃소싱 IT 물류 시스템은 효율성 최대화를 통해 최저 가격제와 재고 제로를 달성해 철저한 경쟁 우위를 유지해 왔다. 현재 RFID 기술을 통해 웹상의 문서 뿐 아니라 진열대 물건까지 ‘정보’로 만들어 관리하는 경영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것도 월마트다.
이 월마트의 경영혁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간명하다. IT 기술 인프라를 ‘만드는 자’ 뿐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는 자’도 성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자는 기술이 인프라가 되는 순간부터 그 영향력이 감소하지만, 후자의 영향력은 더 지속적이고 강대하다. 우리는 후자가 되는 길을 이 PC 이후 시대, IT 인프라가 비용 절감에서 가치 창조의 영역으로 확대되며, 기업 벽 안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돼 가는 오늘날 ‘소셜 웹’ 시대에 더더욱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 트렌드의 추종이 아니라 그 흐름의 본질을 깨닫고, 멀리 보고 높이 나는 길에 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스마트폰도, 클라우드도 문제가 아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샘 월튼의 월마트가 주는 교훈은 그것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잠재적 수요, 부가가치 변화가 만들어내는 산업 발전과 진화에 주목해야 한다. 새로운 유틸리티가 정착된 사회에서, 인간에게 어떠한 필요와 수요가 창출될 것인가. 그리고 거기서 어떠한 새로운 시장을 창조할 것인가. 전구가 전력이 된 후 통신과 방송 산업이 등장했다. 그렇다면 구글과 페이스북같은 소셜 네트워킹이 사회적 유틸리티와 인프라가 된 상황에서는, PC가 더 이상 필요 없는, 모든 것이 다 컴퓨팅인 시대에서는 어떠한 새로운 산업과 시장 그리고 사회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PC 이후 시대 천하삼분지계’를 논하자.
출처: 블로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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